글을 쓰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공동선]독서모임 코코- 선택의 논리에서 돌봄의 논리로 본다면
2026.09.29 09:14
- 나눈 핵심 질문
아네마리 몰의 『돌봄의 논리』를 읽으며 우리는 ‘좋은 돌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선택한다는 것만이 정말 자율적이고 능동적일까?’라는 질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현대 의료에서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흔히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여러 치료방법 가운데 환자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선택의 논리’는 의사가 결정하고 환자가 따르던 가부장적인 의료를 비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몰은 선택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왜 우리가 능동적인 환자를 반드시 ‘선택하는 환자’로 생각하는지를 질문한다.
특히 우리에게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몰이 사람들의 ‘선택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돌봄의 논리에서 ‘선택의 상황들’을 고려하자고 제안하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초점을 옮기면 선택은 독립적인 개인이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순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행동과 상호작용이 조직되는 방식, 몸과 사람과 일상을 이해하는 방식, 지식과 기술을 다루는 방식, 무엇을 좋고 나쁜 것으로 판단하는지까지 함께 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에서도 누군가가 ‘무엇을 선택했는가’만을 묻는 대신, 그 선택이 어떤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바라본다면 무엇이 다르게 보일까? 이 질문을 중심으로 각자의 의료 경험에서부터 임신과 선별검사, 노동, 범죄 피해자의 경험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 주요 내용
- 1) 우리가 경험했던 좋은 돌봄
먼저 각자가 의료현장에서 경험했던 돌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참여자는 최근 질환 때문에 여러 의료기관을 다니다 한의원을 찾았던 경험을 떠올렸다. 그곳에서는 단순히 증상을 확인하고 치료방법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 몸의 상태와 일상생활에 대해 비교적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현재의 생활과 몸에 관심을 기울이는 과정 자체가 ‘돌봄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고 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질환을 관리하기 위해 약을 복용할지, 생활습관을 바꾸어볼지를 의사와 상의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생활습관을 바꾸는 쪽을 선택하고 노력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다. 잘 실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마음의 짐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만난 다른 의사는 모든 것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며 선천적인 요인도 있을 수 있고, 현재의 약물치료가 별다른 문제 없이 잘 맞는다면 그것을 지속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책망하기보다 지금의 몸과 생활에서 가능한 방법을 함께 찾아주는 의사의 말이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임신 당시 대학병원에서 진료받았던 경험도 나왔다. 주변에서는 같은 대학병원의 다른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으면서 의사와의 소통에 불만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자신은 담당 의사가 진료 때마다 자신의 상태를 잘 설명해주고 진료해주었기 때문에 비교적 만족스럽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러한 경험들을 나누면서 우리는 좋은 돌봄에는 반드시 거창한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환자의 말을 듣는 것, 지금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는 것,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 잘 해내지 못한 일을 책망하기보다 현재의 몸과 생활에서 가능한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 돌봄의 논리라고 생각했다.
몰에게 환자가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선호’만이 아니다. 환자는 자신의 몸과 일상에서 치료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전문가의 지식과 환자의 지식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한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지식을 구체적인 상황에서 맞추어나가는 것이다.
또 다른 참여자는 거동이 불편해진 할머니의 일상을 떠올렸다. 이전에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어려워지면서 화장실에는 몸을 지지하고 일어설 수 있도록 안전손잡이가 설치되고, 가족들도 일상생활을 돕게 되었다. 여기에서 돌봄은 누군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행위라기보다 변화하는 몸에 맞추어 집 안의 사물과 공간이 달라지고, 가족들의 행동과 생활방식도 함께 조정되는 과정처럼 보였다.
몰에게 돌봄은 한 번의 올바른 결정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몸의 반응을 관찰하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다시 수정한다. 좋은 돌봄은 이러한 조정을 반복하며 계속해나가는 실천이다.
2) 『돌봄의 논리』에 대한 감상
책 자체에 대한 감상도 나누었다.
한 참여자는 이 책이 자신의 연구주제와 직접 연결되는 책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계속해도 된다는 용기’를 주었다고 이야기했다.
책의 마지막에서 몰은 세상을 우리가 외부에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기보다 그 안에서 행동하고 개선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계와 습관, 우리 자신을 서로 맞추어나가야 하며, 세상을 지배한다는 환상을 버리고 그 속에 몸과 마음을 다해 참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을 “만성적으로, 죽는 날까지” 계속해야 한다고 쓴다.
우리 역시 각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며 무언가를 바꾸어보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일을 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낙담에 빠지곤 한다. 그런데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계속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만성적인 통증처럼 우리가 하는 작은 작업 역시 세상에 어떤 ‘불편한 파동’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그냥 죽는날까지 만성적으로 계속하는 것이라는 말이 지친다라는 느낌보다 오히려 묘한 위로로 다가왔다.
또 다른 참여자는 몰의 연구와 글쓰기 방식에 주목했다. 『돌봄의 논리』는 철학적인 개념 작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당뇨병 환자와 의료진의 구체적인 실천을 민족지적으로 따라간다. STS 연구가 구체적인 현장의 복잡성을 따라가면서 다소 발산적인 형태로 남는 경우도 있는데, 몰은 그 복잡성을 충분히 보여주면서도 ‘선택의 논리’와 ‘돌봄의 논리’라는 철학적인 문제로 다시 수렴하는 글을 쓴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 책의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돌봄이란 무엇인지, 의료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조금 달랐다는 감상도 있었다. 이 책은 자율성과 능동성을 반드시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되묻고, 돌봄에 참여하고 함께 조정해가는 또 다른 형태의 능동성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의미에서 신선했고, 복잡한 문제를 비교적 쉽게 풀어내는 글쓰기 역시 인상적이었다.
3) 선택은 어떤 조건과 함께 하는가
이야기는 임신 중 다운증후군 선별검사에 관한 경험으로 이어졌다.
한 참여자는 대학원 수업에서 임신 중 다운증후군 선별검사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고 했다. 검사를 통해 태아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받게 되면 여성은 임신을 지속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기술은 여성에게 더 많은 정보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자율성의 확대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임신을 중단하기로 했을 때에는 죄책감을 느낄 수 있고, 반대로 임신을 지속하기로 했을 때에는 앞으로의 삶과 돌봄에 대한 불안과 책임을 느낄 수 있다.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이 더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몰이 개인의 ‘선택 능력’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한발 물러서서 ‘선택의 상황들’을 보자고 했던 대목을 떠올렸다.
이렇게 보면 임신을 지속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의 결정 역시 독립적인 개인이 이미 주어진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단순한 행위로만 볼 수 없다. 그 선택에는 임신한 몸과 태아의 상태, 의료진이 제공하는 의학적 지식, 선별검사라는 기술,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가족과의 관계, 아이를 낳은 이후 가능한 돌봄과 지원 등 여러 요소가 함께 얽혀 있다.
따라서 질문도 “여성에게 충분한 선택권이 주어졌는가?”에서 끝나지 않고 “애초에 이것은 어떤 종류의 선택 상황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로 이동할 수 있다. 어떤 지식과 기술을 통해 선택지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어떤 삶이 좋거나 나쁜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지, 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어떤 몸과 관계 속에 놓여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흥미로웠던 이유는 선택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선택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선택했는지만 보는 대신, 우리가 ‘개인의 선택’이라고 부르는 상황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 이것이 몰이 돌봄의 논리가 필요하다고 말한 이유 아닐까?
4)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회를 넘어서서
이 지점에서 우리의 대화는 의료를 넘어 노동과 사회 전반으로 이어졌다.
쿠팡 노동자의 죽음이나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 같은 문제가 알려졌을 때 때로는 “그 일을 본인이 선택한 것 아니냐”, “힘들면 다른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응을 만나게 된다.
몇 년 전 유행했던 ‘누칼협’, 즉 ‘누가 칼 들고 그거 하라고 협박했느냐’라는 표현도 떠올랐다. 누군가 자신의 삶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누가 그걸 하라고 강요했느냐”고 되묻는 것이다. 한 참여자는 이런 표현을 떠올리며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삭막해졌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다른 참여자는 이기주의에 가까운 개인주의와 능력주의, 자기책임을 강조하는 문화 등이 함께 작용한 것은 아닐까 이야기했다.
이 역시 몰이 말하는 ‘선택의 상황’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이 그 직업을 선택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면 관심은 그 개인의 선택에 머문다.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그 일을 골랐으니 그 결과 역시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나 그 사람이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묻기 전에, 우리가 ‘그 사람의 선택’이라고 부르는 상황 자체는 어떻게 만들어져 있었을까?
그 사람이 가진 경제적 조건과 가족관계, 노동시장에서 실제로 접근할 수 있었던 일자리, 고용형태와 노동조건 등이 그 선택과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이주노동자라면 체류자격이나 고용제도 역시 중요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특정한 직업을 ‘선택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이후에 발생하는 위험과 고통을 온전히 개인에게 귀속시키기는 어려워진다.
몰의 돌봄의 논리에서는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의 잘못인지를 먼저 묻기보다 돌봄의 어떤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해진다. 선택의 책임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방식에서 벗어나 무엇이 잘못 맞물렸는지를 살피고 다시 조정하는 것이다.
물론 네덜란드 당뇨병 진료실에서 만들어진 몰의 돌봄의 논리를 노동 문제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몰이 말한 ‘번역’이라는 문제가 중요해졌다.
5) 돌봄의 논리를 다른 영역으로 ‘번역’한다면
몰은 자신이 네덜란드의 당뇨병 치료에서 발견한 돌봄의 논리를 모든 영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원칙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만약 ‘선택의 원칙은 틀렸으니 이제 모든 곳에 돌봄의 원칙을 적용하자’고 한다면 돌봄 자체가 다시 실천 외부에서 주어진 정답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다른 영역으로 가져갈 때에는 각 영역의 조건에 맞게 돌봄의 논리를 번역하고 변형할 필요가 있다.
한 참여자는 여기에서 범죄 피해자의 경험을 떠올렸다. 범죄 관련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CCTV를 직접 확보하거나 목격자와 증언을 찾아다니는 등, 사건을 입증하기 위해 스스로 발로 뛰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일을 사설탐정 등이 도와주기도 한다.
이를 보면서 법의 영역에도 돌봄의 논리를 번역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피해자에게 법적 선택지를 제시하고 “고소할 것인가 말 것인가”, “소송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그 사람이 실제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발생하는지를 살피고 필요한 도움을 계속 조정해가는 것까지 생각해야 할까?
의료에서의 돌봄과 법에서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은 분명 서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의료의 돌봄 방식을 그대로 법에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니라, 법이라는 영역에서 ‘돌본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를 다시 묻고 그에 맞게 변형하는 것일 것이다.
6) 모임을 마치며
처음에는 ‘좋은 의료란 무엇인가’라는 이야기에서 시작했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리는 선택과 책임의 문제로 돌아왔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환자에게서 선택권을 빼앗아 다시 전문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게 하자는 것도 아니다. 몰이 문제 삼는 것 역시 선택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에게 더 흥미로웠던 것은 선택하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벗어나 돌봄의 논리로 봤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의료에서는 환자의 몸과 일상, 의료진과의 관계, 약물과 검사기술이 보였다. 임신 중 선별검사에서는 임신한 몸과 의학적 지식, 검사기술,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돌봄의 조건이 보였다. 노동에서는 경제적 조건과 노동시장, 고용관계와 제도가 보였다. 법의 영역에서는 피해자가 실제로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고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많은 과정들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너무 쉽게 던지는 “그래도 네가 선택한 거잖아”라는 말은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보이지 않게 만드는 말인지도 모른다.
또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불편해하고, 살피고, 조정하는 것. 어쩌면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하는 작업도 그런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나누며 모임을 마쳤다.
- 활동 일시: 26.9.28.수 저녁6~8시
- 활동 장소: 구글 meet 온라인 모임
- 참석자 이름: 김다연, 고지애, 박유빈, 유지희, 이소영, 홍은영,
- 활동 사진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
이집트 예술로 죽음과 자기지(自己知)에 대해 질문을 던지다
|
whenlifemetart | 2026.09.29 | 15 |
문화예술 안에서 배리어프리와 접근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해야 할까
|
yeonjunchoi17 | 2026.09.29 | 13 |
독서모임 코코- 선택의 논리에서 돌봄의 논리로 본다면
|
jhyou | 2026.09.29 | 18 |
우리는 어떤 수고를 직접하고, 무엇을 맡기고 있을까?
|
sunbok1025 | 2026.09.29 | 17 |
예술가 되-기 : 본질과 정체성에 관하여
|
notabookclub | 2026.09.27 | 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