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umazein 인문철학재단 타우마제인

이집트 예술로 죽음과 자기지(自己知)에 대해 질문을 던지다

WLMA
죽음

이번 모임에서는 『헤겔 미학강의』 제2부 예술미의 특수한 형식들을 향한 이상의 전개, 제1편 상징적 예술형식 제1장 무의식적 상징성 C. 본격적 상징 (pp. 470-488) 부분을 읽고, 각자의 질문에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책을 읽고 생긴 질문은 AI와 쉬었음 청년 같은 우리 일상의 이야기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핵심 질문

  1. 죽음은 왜 ‘상위의 정신성의 탄생’이 되는가?
  2. 영혼의 불멸성과 정신의 자유는 무엇일까? “자기지가 곧 자유의 원리”라는 말이 AI와 함께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3. 이집트 예술의 수수께끼같은 상징은 수동적 상상력의 산물일까? 창조적 판타지의 산물일까?

주요 내용

1. 죽음은 왜 ‘상위의 정신성의 탄생’이 되는가?

[질문 배경] 헤겔은 죽음이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자연적인 것이 직접 소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한 자연성이 죽음으로써 더 높은 정신성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죽음을 정신성의 탄생이라 부르는 근거가 무엇인지, 부활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영향인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었습니다.

[논의 내용]

사후세계가 있다는 사고는 여러 종교에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고 논의되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헤겔이 죽음을 정신성의 탄생으로 해석한다는 점이고, 그 근거는 『정신현상학』 자기의식 장에 있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의식하는 존재이며, 이는 곧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인정 투쟁에서 인간은 자연적 생명을 걸고서라도 “나는 나”임을 인정받고자 하고,바로 자유가 중요합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처럼 자연적 생명의 유지와 자유 가운데 무엇을 택하느냐에 있습니다.

따라서 죽음이 한층 상위의 정신성의 탄생이라고 불리는 근거는 자기 의식을 통한 자유와 연결이 되는 지점입니다. 

2. 영혼의 불멸성과 정신의 자유는 무엇일까? “자기지가 곧 자유의 원리”라는 말이 AI와 함께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질문 배경] “영혼의 불멸성과 정신의 자유는 매우 가까이 놓여 있는 것이니”(p. 480)에서 ‘영혼’과 ‘정신’의 차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또한 ‘영혼의 불멸성’과 ‘정신의 자유’가 가까이 놓여있다는 의미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더 나아가  오늘날 ‘AI’를 통해 ‘자기지가 곧 자유의 원리다’라는 말의 유효성에 대해서도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논의 내용]

  • ‘영혼’과 ‘정신’의 차이
    영혼 불멸은 호메로스 시대부터 이어진 고전적 주제입니다. 헤겔은 psyche(숨), anima, soul로 이어진 영혼 개념을 역사적으로 생성·지속·소멸하는 ‘Geist(정신)’로 파악했습니다. 둘은 “다르면서도 같고 같으면서도 다른” 관계이며, 변증법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 ‘영혼의 불멸성과 정신의 자유가 가까이 놓여있다’는 의미
    정확히는 영혼의 불멸성과 정신의 자유가 가까이 놓인 이유가 자기기인적이라는 의미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이때도 주인과 노비를 통해 자유가 자기기인적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기가 판단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자유로운 사람의 핵심적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가 판단할 수 있는데에는 노예해방이 되기까지의 많은 과정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 더 나아가 AI를 통해 자기지가 가능한지, 자기지의 근본적인 물음이 ‘쉬었음’ 청년을 만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AI로 인해 우리가 매번 찾아야 했던 것을 쉽게 알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수집된 정보를 정답처럼 받아들이다보면 ‘자기지’와는 멀어지게 됩니다. 실제로 스마트폰을 폴더폰으로 바꾸어 인터넷을 통해 사용하는 기능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젊은 세대의 흐름이 뉴스에 나오기도 합니다. 당연히 AI가 해결해준다는 이유로 모든 판단을 맡기면 AI에 종속되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귀결됩니다. 이로 인해 요즘 쉬었음 청년에 대해서도 연결했습니다. 이미 AI가 정답이 되고 친구가 되어 사람들은 온라인 외의 세상과 멀어지게 되면서 스스로 고립과 외로움을 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쉬었음 청년은 계속 바쁘게 살아가기는 강요받았던 기성세대와 다른 방식인데 이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견으로도 이어졌습니다.

3. 이집트 예술의 수수께끼같은 상징은 수동적 상상력의 산물일까? 창조적 판타지의 산물일까?

[질문 배경] 헤겔은 “판타지를 단순 수동저인 상상력과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p. 380)는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이집트 예술의 상징은 판타지인지, 수동적 상상력의 산물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논의 내용]

“이집트 예술의 비밀스러운 상징성은 수수께기, 그것도 객관적 수수께끼 그 자체이다”(p. 487)에서 ‘객관적 수수께끼’는 스핑크스를 가리킵니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수수께끼를 내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지만,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에 기품 있는 남성의 얼굴을 하고 피라미드를 지키는 수호자입니다. 같은 이름 아래 전혀 다른 형상이 태어났다는 것은, 이집트인들이 죽음과 신과 영원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 창조한 판타지라는 뜻입니다. 

헤겔이 상상력과 판타지를 나누는 이유는 칸트와도 연결이 됩니다. 칸트에 있어 상상력은 감각과 지성의 범주를 잇는 인식론적 역할입니다. 하지만 헤겔은 칸트가 정의한 상상력으로 예술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며 이를 판타지에 가깝다고 보았습니다. 

 

  • 활동일시 : 2026년 9월 10일(목) 오후 9시 30분
  • 장소 : ZOOM(온라인)
  • 참석자 : 설헌영, 한승희, 박재현, 박영진, 윤자경, 김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