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umazein 인문철학재단 타우마제인

‘한류’라는 스펙타클 속에서 우리는 누구의 고통을 소비하고 있는가?

인문 콜렉티브 아는 게 죄
정의

나눈 핵심 질문

  • 한류를 대표하는 소설에서 가장 강하게 기억되는 고통은 무엇인가? 그 고통을 만든 관계나 사회적 조건도 함께 기억되고 있는가?
  • 읽는 재미와 긴장감은 인물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는가?
  • 작품의 해외 진출과 수상을 ‘한류의 성공’이라고 설명할 때, 작품이 드러내고자 한 고통은 어떻게 다루어지는가?
  • 작품의 한국적 배경을 보편적 주제로 설명할 때, 인물의 고통 가운데 무엇이 배제되는가?

주요 내용

고통은 어떻게 한류가 되는가

-2026년 하반기, 타우마제인 리더스클럽 발제문 / 신동하

한국의 이야기를 해외 독자가 읽는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 성과를 이루는 작품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살펴보면, 성공을 축하하는 마음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난다.

해당 작품들에는 폭력에 노출된 신체,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는 삶, 착취당하는 노동,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고통이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품들의 해외 진출을 기뻐하면서도, 작품 속 인물들이 왜 고통받는지도 함께 묻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인문콜렉티브 아는게죄는 2026년 하반기에 『채식주의자』, 『저주토끼』, 『홀』, 『검은 꽃』, 『철도원 삼대』 다섯 작품을 다시 읽는다. 한국 소설에 담긴 고통이 해외 독자에게 전달되는 방식에 주목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때, 작품을 독해하는 주요한 틀로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을 활용한다. 문화산업론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문화의 생산과 소비가 산업 논리로 조직되는 양상을 비판한 이론이다. 특히, 문화산업론을 질문 틀로 쓰고, 그 틀로 유통 과정을 따진다. 각 작품을 성공이나 실패로 판정하는 대신, 어떤 조건에서 그 고통이 소개되고 읽히는지를 묻는다.

공포라는 형식과 고통의 상품화 — 『저주토끼』와 『홀』

『저주토끼』에서는 환상과 기괴함을 통해 일상적인 관계와 사회질서의 잔혹함을 읽을 수 있다. 해외 소개에서도 사회 비판과 공포의 재미가 함께 강조된다.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공식 독서 안내는 『저주토끼』의 이야기가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이라고 설명한다. 이 독서 안내는 그 이야기가 현대 사회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지닌 잔혹함을 다룬다고 덧붙인다. 심사평 역시 작품 속 공포가 일상의 두려움과 압박에서 비롯된다고 평가했다.

한편 부커상 공식 팟캐스트는 2023년 『저주토끼』를 핼러윈에 읽기 좋은 무서운 책으로 소개했다. 같은 소개에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공포를 다룬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사회의 폭력을 고발하는 작품이 특정한 계절에 즐길 공포물로 제시된 것이다. 공포라는 장르 형식은 사회 비판의 내용을 전달하면서 동시에 그 내용을 오락적 소비의 틀에 담는다.

『홀』의 해외 소개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상황을 통해 돌봄과 지배의 경계를 묻게 한다. 미국 출판사 Arcade는 이 작품을 고립과 방치의 공포를 다룬 소설로 설명하면서, ‘한국판 『미저리』’라는 《타임》의 평가를 함께 싣고 있다. 이러한 비교는 낯선 작가의 작품을 해외 독자에게 익숙한 장르와 연결한다. 해외 독자는 스릴러를 기대하며 책을 펼치지만, 그 긴장감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의존해야 하는 인물의 처지다.

여기서 질문할 것은 독서의 긴장감이 어디로 향하는가이다. 앞으로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하는 마음이 오기의 무력함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면 사건의 결말에만 집중한다면,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처한 관계의 불평등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홀』을 읽으며 느끼는 공포를 현실의 의존과 방치 문제까지 연결할 때, 장르적 재미는 고통을 생각하는 출발점이 된다.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 —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는 한국적 특수성과 보편적 고통 사이의 문제를 제기한다. 영혜의 몸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판단에 좌우되는 영역이며, 그것이 그녀의 선택에도 개입한다. 한강은 부커상 인터내셔널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이야기로 읽는 데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한국 사회를 넘어서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또한 주변 인물들이 영혜를 관찰하고 오해하고 대상화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다른 인물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 설명을 따라가면, 해외 독자는 영혜의 고통에서 한국 사회의 맥락과 보편적 인간의 조건을 함께 읽는다. 한국 사회의 맥락은 중요하지만, 해외 독자는 그 폭력을 자신과 무관한 문화의 특성으로 받아들인다. 반대로 모든 것을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로 설명하면, 영혜를 둘러싼 구체적인 가족관계와 사회적 규범을 놓친다. 작품의 보편성은 차이를 지우는 대신, 낯선 삶의 구체적인 조건을 따라가며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역사의 고통과 국가 홍보 — 『검은 꽃』과 『철도원 삼대』

『검은 꽃』과 『철도원 삼대』에서는 이주와 노동의 경험이 역사적 폭력과 맞물린다. 『검은 꽃』의 멕시코 출간은 해외 유통이 역사적 고통을 다시 기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멕시코 한국문화원은 현지 출판사들과 접촉해 2021년 번역 출간을 추진했다. 공식 자료에는 한인후손회와 대학 등에 책을 배포하고, 이민사와 디아스포라를 토론하는 행사를 마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문화원은 이 활동을 한국 문학이 멕시코에서 새로운 한류 콘텐츠로 자리 잡도록 하는 사업으로 설명했다.

애니깽은 멕시코 유카탄반도에서 자라는 용설란과 식물로, 줄기에서 뽑은 섬유로 밧줄과 자루를 만드는 데 쓰였다. 1905년 한인 1,033명이 계약 노동자로 멕시코에 건너가 애니깽 농장에서 일했다. 농장주는 이들에게 낮은 임금을 주고 노동시간을 길게 매겼으며, 계약 기간 중에는 농장 밖으로 나가는 일도 막았다. 계약이 끝난 뒤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멕시코에 남은 한인이 많았다. 『검은 꽃』은 이 역사를 소설로 옮긴다. 소설은 이름을 남기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다시 쓴다. 공식 자료가 말하는 이민사와 디아스포라는 바로 이 애니깽 이주노동의 역사를 가리킨다.

이 사례에서 이주노동자의 고통은 한국 문화를 알리는 자원이 되는 동시에, 그 역사가 일어난 장소에서 다시 이야기되는 기억이 된다. 따라서 국가 홍보와 역사적 성찰이 어떤 관계를 맺는지 물어야 한다.

『철도원 삼대』에서도 국제적 인정과 역사적 성찰의 관계를 보여준다. 영어판 『Mater 2-10』은 2024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후보에 올랐다. 황석영은 공식 인터뷰에서 한국 문학에서 소외돼 온 근대 산업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의 흔적을 되살리려고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부커상 독서 안내가 소개한 해외 비평 역시 노동운동 탄압과 식민지 지배의 유산, 세계 자본주의 아래에서 주변화된 삶을 짚고 있다.

문화산업론을 판정이 아니라 질문으로 쓰기

이 지점에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문화산업론을 연결할 수 있다.

『계몽의 변증법』의 문화산업론은 문화의 생산과 소비가 산업의 논리에 따라 조직되면서 오락이 기존 사회에 대한 순응과 결합하는 문제를 비판한다. 이들은 즐거움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잊게 하고, 현실에 저항하는 생각을 약화하는 오락의 작용에 주목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작품에 고통이 등장하는 사실은 조건이며, 사회 비판으로 이어지는지는 독자의 반응에 달려 있다. 해외 독자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질문을 남기는지까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앞의 사례들은 상품으로 유통되는 문학이 고통을 새롭게 드러낼 가능성도 보여준다. 이러한 가능성을 검토하려면 문화산업론을 작품의 성공과 실패를 미리 판정하는 공식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고통이 어떤 형식으로 제시되고, 어떤 소개를 거쳐 유통되며,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지 따지는 질문으로 활용해야 한다.

다섯 작품을 읽는 우리의 태도도 이 문제의 일부다. 출판사 소개, 문학상 심사평, 문화기관 홍보가 만들어내는 언어는 우리가 고통을 읽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인물의 고통에 슬퍼하는 일과 그 고통의 조건을 이해하는 일은 서로 연결되면서도 별개다. 폭력적인 장면을 충격적으로 기억하면서도 폭력을 가능하게 한 관계는 지나칠 수 있고, 노동자의 투쟁에 감동하면서도 오늘날의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대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품을 읽은 뒤에도 남는 불편함이 있다면,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구체적인 장면과 현실의 관계 속에서 생각해야 한다.

한류의 성과를 살필 때도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더 많은 나라에서 읽힌다는 사실에 더해, 그 성과를 알리는 언어가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가리는지 물어야 한다. 그 독서가 누구의 삶을 드러내고 어떤 대화를 만들어내는지도 물어야 한다.

이 작품들이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를 논의하는 자리가, 작품 속 사람들이 왜 고통받아야 했는지 묻는 자리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활동 일시: 2026년 9월 23일
활동 장소: 쌍문동 백운시장 헌책방 생활용품
참석자 이름: 백승석, 신동하, 황덕룡, 이다미, 조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