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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사랑]이기심 혹은 자기애는 사랑을 저해하는가, 가능케 하는가?
2026.09.23 07:22
이번 토론의 핵심 질문 제안자는 서재은님입니다.
“이기심 혹은 자기애는 사랑을 저해하는가, 가능케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하고, ‘이기심 혹은 자기애’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만
더욱 수월하게 답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발제문의 총 6개의 질문 중,
1,2번 질문은 ‘사랑’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3,4번 질문은 ‘이기심 혹은 자기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배치했습니다.
5번 질문에서 이번 토론의 ‘핵심 질문’을 다루고,
6번 질문에서는 5개의 질문과 5번의 문답을 통해
새로이 떠올린 오직 나만의 질문에 대해 집중할 수 있도록 발제문을 구성했습니다.
토론 진행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여자들은 모바일 링크로 온라인 발제문에 접속해 현장에서 질문을 확인합니다.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고민하고, 정리하고, 작성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집니다.
답변 작성 후, 각 질문용 첨부 자료 인용문을 각자 읽으며 전원 답변 작성을 기다립니다.
이후 작성 답안을 기반으로 순차적으로 서로의 생각을 듣고 말하며 토론합니다.
발제문의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위 순서를 반복합니다.
이후는 토론 질문과 작성 답안의 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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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사랑과 이기심》
Q1 · 한 문장으로 적어본다면, 당신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김가람]님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깨끗한 공기와 같은 것 : 부족하다 느낄수록 숨 막히고 아파서. 꼭 필요하다.
[김지연]님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굳이 같이 하는 것
[김태상]님
모든 생명체가 자동으로 터득하는 것
[서재은]님
서로를 더 성장시켜주는 관계
[송정훈]님
나라는 우주, 너라는 우주,
타인과 사귄다는 것은 지구 밖으로 진출하는 경이로움, 놀라움, 모험.
[이환규]님
상대방을 향해 열정적인 감정이 끓어오르는 상태
[정미진]님
내가 받은 것들을 흘려보내는 통로
Q1의 인용 자료 : 사랑은 기술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을 하나의 진단으로 시작해요. 사람들은 사랑을 원하면서도, 정작 사랑을 배워야 할 대상으로는 여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이유를 그는 세 가지 오해로 짚어요. 첫째,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는 것. 둘째, 사랑을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 그러니까 알맞은 상대만 만나면 저절로 풀리는 문제로 여긴다는 것. 셋째, 서로에게 ‘빠져드는’ 최초의 체험을 사랑 속에 ‘서 있는’ 지속 상태와 혼동한다는 것이에요. 프롬이 보기에 이 세 오해가 합쳐지면 사랑은 운(運)의 문제가 되어버리고, 배울 것이 없는 것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프롬은 사랑을 ‘기술(art)’이라 불러요. 의술이나 음악처럼 사랑도 이론을 익히고, 실천을 반복하고, 무엇보다 그것을 삶의 궁극적 관심사로 삼아야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에요. 사랑에 빠지는(falling) 일은 누구에게나 우연히 일어나지만, 사랑 안에 서 있는(standing) 일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아요. 그건 배워야 하는 능력이에요.
이 기술의 본질을 프롬은 한 단어로 압축해요.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인 ‘활동’이고, 그 활동의 핵심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에요. 여기서 주는 건 빼앗기거나 희생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줌으로써 자신의 힘과 풍요와 살아 있음을 경험하는, 생명력의 가장 높은 표현이에요. 그래서 프롬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누구를 만나느냐로 가지 않고, 나는 줄 수 있는 사람인가, 곧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가로 되돌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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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 두 사람 사이, 당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사랑의 관계는 어떤 모습인가요?
[김가람]님
기쁠 때나 무너질 때에도 서로가 단단한 정서적 지지기반이 되어주는 관계. 혹여 그 사람이 곁에 없더라도 마음속에 남아 미소를 일으키고 안정적인 심리적 기반 위에 행복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관계.
[김지연]님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안쓰러워하는 마음으로’ 같이 하거나 내가 대신 해주는 관계,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관계
[김태상]님
각자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관이 최소화하고 그 외에는 서로 타협하고 조율하는 관계,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
[서재은]님
신체건강, 정신건강, 사회성, 인간관계, 재정상태, 돈 버는 능력이 정상적인 두 명이 만나서 즐거운 경험을 쌓으며 신뢰를 다져나가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
[송정훈]님
각자가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이 있고,
서로의 다름을, 취향을, 색을 존중하면서 품어주고, 내가 기대기도 하고 상대가 기대도록 내어주기도 하는 관계.
[이환규]님
일방적이거나 의존적이지 않고, 서로를 구속하지 않으며, 함께 성장하고 같이 있으면 행복함이 배가 되는 관계.
[정미진]님
불이익도, 희생도 감수할 수 있는 관계.
그리고 서로를 서로이기 때문에 신뢰하는 관계. 서로이기 때문에 조금 떨어져 있더라도 괜찮은 관계.
Q2의 인용 자료 : 프롬이 제시하는 이상적 사랑의 관계와 태도
프롬은 사랑을 설명하기 전에 인간의 근본 조건을 먼저 짚어요. 인간은 자신이 다른 존재와 분리되어 있음을 아는 유일한 생명이고, 이 ‘분리감’이 불안의 원천이에요. 인류는 이 분리를 넘어서려고 온갖 길을 시도해 왔어요. 도취, 집단에의 동조, 창조적 노동이 그것인데, 프롬이 보기에 이것들은 부분적인 답일 뿐이에요. 온전한 답은 오직 하나, 다른 사람과의 결합, 곧 사랑이에요.
그런데 모든 결합이 사랑은 아니에요. 프롬은 미성숙한 결합을 ‘공생적 결합’이라 부르고, 그 두 얼굴을 구분해요. 수동적 형태는 복종이에요. 자기를 지우고 상대의 일부가 되어 지시받고 보호받는 대신 자기 자신을 잃어요. 능동적 형태는 지배예요. 상대를 삼켜 자기의 일부로 만들고 그의 독립을 허락하지 않아요. 방향은 정반대지만 둘 다 같은 일을 해요. 한쪽의 개체성이 사라지는 거예요.
성숙한 사랑은 이 둘과 결정적으로 달라요. 프롬의 정의는 이래요. 사랑은 「자기의 통합성과 개체성을 보존한 채 이루어지는 합일」이에요. 두 존재가 하나가 되면서도 여전히 둘로 남는 역설, 이것이 사랑의 핵심이에요. 그는 이 차이를 한 문장의 순서로도 보여줘요. 미성숙한 사랑은 “당신이 필요하니까 사랑한다”고 말하고, 성숙한 사랑은 “사랑하니까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해요.
이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태도로 프롬은 네 가지를 들어요. 보살핌, 책임, 존중, 앎이에요. 그중 ‘존중(respect)’을 그는 라틴어 어원 respicere, 곧 ‘바라보다’로 풀이해요. 존중이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 그 자신의 방식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래서 프롬은 말해요. 「사랑은 자유의 산물이지 결코 지배의 산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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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 사랑 안에서 이기심 혹은 자기애란 당신에게 무엇인가요?
[김가람]님
상대의 마음을 살피기보다 내 욕구를 실현시키고 싶은 마음 < 그랬을 때 해로움도 있구나 깨닫고, 안전하고 존중받고 싶은 욕구였다는 것을 알아차림 < 관계를 지키고 사랑하려는 욕구와 노력도 자기를 위한 일임을 알게 됨
(제가 느낀 자기애의 성장을 < 로 표현해보았습니다)
[김지연]님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마지막 방어막이자 상대를 좋아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인 것 같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기심이나 자기애도 포기하고 다 져주게 되고,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미워하는 마음이 커지고 여유가 없어지면 이기심이나 자기애도 더 커지는 것 같다.
[김태상]님
내가 포기하지 못한 나의 가치관
[서재은]님
상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상대의 세상을 좁게 만들면서 자신의 세상을 넓히려는 시도. 예를 들어 상대의 돈, 시간, 노력, 감정을 자원을 소비해서 자기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려는 것. (편의, 저축 등)
[송정훈]님
저에게 이성 간의 관계에서 이기심과 자기애는 무시된, 침해된 내 권리(내 인격 존중)에 대한 복권을 주장하는 형태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나의 인격을, 가치관을
존중해주지 않는 상대방의 강요에 반발하고 항의하곤 합니다.
[이환규]님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모습을 투영하고 거기에 상대가 맞추길 강요하는 모습이 사랑 안에서 이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미진]님
버리지 못한 ‘나’
Q3의 인용 자료 : 이기심과 자기애의 차이
자기를 사랑하는 건 죄이거나 병이고, 남을 사랑하는 것만이 미덕이라는 통념이 있어요. 자기애와 타인애는 양자택일이라는 생각이죠. 프롬은 이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어요. 사랑은 특정 대상에게만 향하는 감정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격 전체가 세계를 향해 취하는 ‘태도’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나는 그를 통해 삶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 안에는 나 자신도 포함돼요. 나 자신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내 사랑의 대상이어야 해요.
여기서 프롬의 가장 유명한 명제가 나와요. 이기심과 자기애는 같은 것이 아니라 정반대예요.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를 너무 많이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너무 적게 사랑해요. 실은 자기를 미워해요. 자기 자신을 돌보고 긍정할 수 없기에 속은 비어 있고 불안하며, 그 공허를 채우려고 밖의 것을 탐욕스럽게 붙잡아요. 그래서 이기적인 사람은 남을 사랑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도 사랑하지 못해요. 이기심은 자기애의 과잉이 아니라 자기애의 결핍이에요.
프롬은 여기에 더 불편한 관찰을 보태요. 겉보기에 이기심의 반대처럼 보이는 ‘자기 없는 헌신’도 실은 같은 병의 다른 얼굴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는 자기를 완전히 지운 채 자식에게만 바치는 어머니를 예로 들어요. 그런 ‘비이기적’ 헌신 아래에는 종종 삶에 대한 적의가 깔려 있고, 아이들은 그것을 느껴요. 사랑할 능력이 마비된 것을 희생으로 착각하는 거예요.
프롬은 이 절을 자기 말로 끝내지 않아요. 중세의 신비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문장을 통째로 옮겨 놓고 거기서 멈춰요.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한다면, 너는 다른 모든 사람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네가 다른 사람을 너 자신보다 덜 사랑하는 한, 너는 너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너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한다면, 너는 그들을 한 사람으로 사랑하는 것이며, 그 한 사람은 신이자 인간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사랑하면서 다른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위대하고 올바른 사람이다.”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프롬이 이 문장을 고른 이유는 분명해요. 그가 한 장 내내 논증한 것을 에크하르트는 한숨에 말하고 있거든요. 사랑은 나눠 먹는 파이가 아니에요. 나를 사랑하는 몫이 늘어나면 남에게 갈 몫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나와 남을 향하는 사랑은 애초에 하나의 사랑이에요. 그리고 그 안에 결정적인 한 줄이 숨어 있어요. “다른 사람을 너 자신보다 덜 사랑하는 한, 너 자신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 이게 바로 프롬이 말한 이기적인 사람의 초상이에요. 남보다 자기를 더 챙기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데 성공한 게 아니라 실패한 거예요. 그러니까 프롬에게 이기심의 반대는 자기희생이 아니에요. 이기심의 반대는 자기 사랑이고,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것은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같은 뿌리에서 자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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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 두 사람은 언제 ‘우리’가 되고, 또 언제 ‘나’와 ‘당신’으로 돌아가나요?
[김가람]님
서로가 서로를 신경쓴다면 동시적 교차적으로 우리 or 나와 당신이 된다.
소통할 때 우리가 된다. 그러면서 당신과 나를 알게 된다.
물리적으론 무언가를 함께 할 때 우리가 된다. 떨어지면 나와 당신으로 돌아간다.
서로가 당신의 마음을 생각할 때 우리가 된다. 서로가 둘의 모습을 떠올릴 때, 공유될 때 우리가 된다.
나는 이렇고 당신도 그래? 난 이런데 당신은 그래. 난 이렇구나 당신은 그렇구나.
우리이면서 나와 당신이다.
하지만
나만 당신을 그린다면 나이기만 하다. 당신만 나를 그린다면 당신이기만 하다.
서로가 같이 신경쓰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라기엔 부족하다 느낀다.
[김지연]님
같은 곳을 바라볼 때(서로 같은 감정을 나눌 때, 소통이 잘 될 때,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야 할 때 등) ‘우리’가 되고, 다른 곳을 바라볼 때(서로 다른 관점이나 이익 관계, 의견을 가지고 있을 때, 서로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 서로가 사랑하는 관계라는 것을 잊었을 때) ‘나’와 ‘당신’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결국 관계는 두 개인이 만드는 것이니까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한쪽이 자신을 완전히 잃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되기로 했다면 ‘나’와 ‘당신’을 잃지 않도록 혼자인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태상]님
함께 바라는 공통된 가치관이 생길 때, 각자 독립적으로 하는 시간
[서재은]님
우리가 되어야 할 때 : 내가 나의 삶의 필수적인 것들을 채우고, 내가 나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모두 채우고, 그제서야 남는 잉여분을 나눌 수 있을 때,
분리되어야 할 때 : 잉여분이 소진되었을 때
[송정훈]님
상대가 괴로워하고 외로워할 때,
상대가 행복해하고 기뻐할 때, 우리는 함께여야 한다. 하나여야 한다. 내 일처럼 여기게 된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커다란 재앙이 닥칠 때, 우리의 자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닥칠 때, 내가 슈퍼맨이 아닌 고작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인간으로서의 내 최선을 다할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두 사람의 몫을 하겠다며 잠을 4시간으로 줄이고 끼니도 거르며 재앙을 수습하는 판단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이다. 그럴 땐 나에게 필요한 최소치를 챙기는 개인이 되어야 하고, 최소치 외의 나머지 자원을 모두 수습하려 해야 장기적으로 버틸 수 있다.
[이환규]님
내가 나로서 생활할 때는 ‘나’와 ‘당신’으로 돌아가고, 서로의 연인으로 생활할 때는 ‘우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업무가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회의 중이라면 연인이 통화를 원하더라도 통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이렇듯 내가 사회에서 특정 지위에 맞는 역할을 수행할 때는 나는 나로 돌아갑니다. 직장뿐만 아니라 이 지위는 자식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 특정 지위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면 그때는 나와 연인은 우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미진]님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고 즐거울 때 ‘우리’이지만, 나와 다름을 발견하는 순간 개별적인 개체임을 인식하는 것 같다.
Q4의 인용 자료 :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 부부의 문제
프롬은 사랑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아요. 한 사회가 어떤 인간을 요구하느냐가 그 사회의 사랑을 결정한다고 봐요. 현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인간은 잘 교환되고, 잘 기능하고, 큰 마찰 없이 협력하는 인간이에요.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상품처럼 대하게 되고, 이 소외된 태도는 사랑에도 그대로 스며들어요. 사랑은 서로의 ‘인격 패키지’를 시장에서 교환하는 일이 되고, 관계의 윤리는 공정한 거래의 윤리가 돼요.
이 사회에서 결혼의 이상은 ‘팀’이 돼요. 서로에게 좋은 팀 멤버가 되어 매끄럽게 기능하는 것, 부딪히지 않고 효율적으로 굴러가는 것이 성공한 결혼의 척도예요. 프롬은 이것을 냉정하게 묘사해요. 평생 서로에게 낯선 사람으로 남는 두 사람의, 잘 기름칠된 관계. 이런 사랑은 견딜 수 없는 고독으로부터의 피난처 역할을 하고, 세상에 맞서 둘이 뭉치는 ‘둘만의 이기주의(égoïsme à deux)’가 돼요. 프롬은 이것을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대체물이라 불러요.
프롬의 진의를 오해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그는 부부가 함께 잘 굴러가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에요. 문제는 그 ‘함께’가 어떤 함께냐예요. 살아 있는 두 개체가 온전한 채로 이루는 합일인가, 아니면 각자 소외된 채 하나의 기능 단위로 붙어 있는 것인가. 말하자면, 통합된 인격들 사이의 화음인가, 아니면 하나의 법인을 위해 모인 주주들의 효율적 팀 멤버십인가. 프롬이 묻는 건 바로 이거예요. 우리가 ‘우리’가 될 때, 그 우리는 두 사람이 더 살아나는 우리인가, 두 사람이 사라지는 우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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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① · 이기심 혹은 자기애는 연인 관계에서 어떻게 드러나나요? (관찰)
[김가람]님
요구를 하거나 큰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타협하는 것을 배우고 관계를 정적이지 않게 해준다.
[김지연]님
이기심과 자기애를 분리해야 한다면 이기심은 선택의 기준이 ‘우리’가 아니라 ‘나’가 되고, 내 몫을 더 챙기고 싶어하고, 내가 손해 보는 것을 계산하기 시작할 때 드러나는 것 같다. 자기애는 나를 충분히 사랑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 여유가 생기고 마음을 나누고 받을 줄 알 때 드러나는 것 같다.
[김태상]님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때
[서재은]님
이기심: 조금도 손해 보려고 하지 않으면서 본인이 이득 보면 잘됐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
자기애: 1) 자아성찰을 통해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고 자신과 시너지를 일으키는 사람을 찾아 평화롭게 살기
2) 딩크로 살 거면 최소한 1인분 몫은 할 정도의 능력을 키우고, 아이를 한 명 낳을 거면 1.5인분 몫을 할 정도의 능력을 키우기
[송정훈]님
내가 나에 대해 열렬히 관심을 갖고
일상 중에서도 나 자신에 대해 생각을 계속해왔는데, 내 관심사의 자리에 내가 아닌 상대방이 들어서 그 사람을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을 때, 이런 내 모습을 자각할 때, 나에게 이토록 내가 아닌 타인을 사랑하고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면모가 있다니! 하며 놀라면서도 충만감을 느낀다. 이것이 에리히 프롬이 이야기하는 주는 것의 기쁨일까, 나만큼 또 다른 타인을 사랑하는 중인걸까?
[이환규]님
이기심은 상대에게 내가 바라는 걸 요구하면서 드러나고, 자기애는 상대에 대한 관용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정미진]님
자존심을 굽히지 않을 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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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② · 사랑을 저해하나요, 아니면 오히려 사랑을 근원적으로 가능하게 하나요? (판단)
[김가람]님
자기애에 대한 넓이와 깊이, 성숙도에 따라 사랑을 더 가능하게 하거나 멀어지게 한다.
너무 없어도 서로를 알고 자신을 탐구하는 데 깊어지지 못한다.
너무 세운다면 진실된 존중과 타협이 안 되고 화를 일으킨다.
[김지연]님
한 명의 개인을 지킬 수 있는 긍정적인 자기애는 두 사람을 같이 있으면서도 또 별개로 존재하게 하는 마음이므로 사랑을 더 잘 느끼게 만드는 것 같다(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구나를 느끼게 할 때).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 사랑의 마음이 줄었음을 느끼게 하는 이기심은 사랑을 저해한다.
[김태상]님
근원적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해 밖의 것을 붙잡는 이기심은 사랑을 저해하지만, 자기를 알고 홀로 설 수 있게 하는 자기 사랑은 사랑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다 라는 말을 공감한다
[서재은]님
이기심은 사랑을 저해하지만 자기애는 사랑을 굳건하게 만든다
[송정훈]님
자기애, 내가 나를 안아줄 수 있을 때,
그 똑같은 나의 팔과 손과 온기를 그대로 상대에게 뻗어 안아줄 수 있다.
나를 안아줄 팔이 없다면
너를 안아줄 팔도 없다.
[이환규]님
자기애는 사랑을 가능하게 하고, 이기심은 상황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자기애는 자칫 상대의 허물로 보일 수 있는 것조차 사랑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기심은 자칫 잘못하면 상대에게 멍에를 씌웠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반면 서로의 이기심으로 인해 서로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여지도 있습니다. 나에게 결핍된 게 상대에게도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미진]님
처음엔 사랑을 저해하겠지만, 서로 부딪히고 굽히면서 타인을 이해하게 될 때 더욱 끈끈한 사랑을 가능케 한다.
Q5의 인용 자료 : 사랑에 필요한 기술, 정신 집중과 자기탐구
프롬은 책의 마지막 장에서 사랑의 ‘실천’을 다뤄요. 어떤 기술이든 그것을 익히는 데는 공통의 조건이 있어요. 규율, 집중, 인내, 그리고 그 기술을 최고의 관심사로 삼는 것이에요. 사랑도 예외가 아니에요. 프롬이 보기에 사람들이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는 사랑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어떤 기술에도 쏟는 만큼의 규율과 집중을 사랑에는 쏟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 가운데 프롬이 가장 길게 다루는 게 ‘집중’이에요. 그는 집중이야말로 현대인이 가장 못 하는 일이라고 봐요. 우리는 늘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며, 무엇 하나에도 온전히 있지 않아요. 그런데 집중을 배우는 첫걸음은 뜻밖의 곳에 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홀로 있을 수 있는 거예요. 프롬은 단언해요.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조건이다.」 혼자 있지 못해서 누군가에게 매달리는 건 사랑이 아니라 도피이기 때문이에요. 타인 앞에서의 집중이란 곧 그 사람의 말을 온전히 듣는 것, 지금 여기에 온전히 있는 것이에요.
집중은 자기 탐구로 이어져요. 프롬은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에 깨어 있는 ‘자기 감수성’을 강조해요. 몸의 피로를 감지하듯 자기의 불안과 욕망과 두려움을 알아차리는 능력이에요.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나르시시즘 때문이에요.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의 욕망과 두려움으로 왜곡해서 봐요. 이 왜곡을 걷어내는 힘을 프롬은 객관성, 이성, 겸손이라 부르고, 여기에 자기와 타인에 대한 합리적 믿음과 그 믿음을 걸 용기를 더해요.
그래서 프롬에게 사랑의 기술은 결국 상대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를 아는 기술이에요. 자기를 탐구하고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잃지도 상대를 삼키지도 않는 ‘개체성을 보존한 합일’에 이를 수 있어요. 이 지점에서 우리가 처음부터 품고 온 질문, “이기심(자기애)은 사랑을 저해하는가, 아니면 사랑을 가능케 하는가?”에 대한 프롬의 답이 드러나요. 자기를 사랑하지 못해 밖의 것을 붙잡는 이기심은 사랑을 저해하지만, 자기를 알고 홀로 설 수 있게 하는 자기 사랑은 사랑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에요. 이기심과 자기애는 같은 말이 아니라, 사랑을 막는 것과 사랑을 여는 것이라는 정반대의 이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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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6 · 사랑과 이기심을 지나온 지금, 당신 안에 새로 생긴 ‘나만의 질문’ 하나는 무엇인가요?
[김가람]님
서로가 잘 맞을 때 상대도 받는 게 많고 나도 줄 수 있는 게 많다고 느끼고, 반대로 안 맞을수록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상대에겐 괴로운 것이 돼 버린다. 난 그대로인데 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내 존재에 대한 인식도 괴로워진다.
이게 과연 객관적인 것처럼 설명하는 자기애, 이기심, 기술의 문제일까?
[김지연]님
너무 사랑하는 상대에게 자신(이기심 혹은 자기애)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기심을 가진 사람)이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방법은 무엇인가?
[김태상]님
플라토닉 러브는 존재할까?
[서재은]님
– 주는 능력이 다를 때는 인위적으로 받는 것을 동일하게 해야 하는가?
– 본인 인생도 어쩌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이 “사랑받는다는 명분으로 남에게 기생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송정훈]님
각자의 색깔을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명제에는 동의하지만, 상대의 주장 중 어느 것은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하고, 어느 주장은 타협하거나 의논할 수 있는 영역인 것일까? 그 기준은 무엇일까?
[이환규]님
‘사랑이라는 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야(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라는 말은 과연 맞는 말일까?
[정미진]님
왜 사람은 나와 다른, 이전까지 관계도 없던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가? 왜 고통받고 싸우며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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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일시:
2026년 9월 11일 저녁 7시~밤 10시. 3시간 진행.
활동 장소:
서울 광진구 뚝섬 한강공원 여름 캠핑장 인근
참여자:
[김태상]님 [김가람]님 [김지연]님 [서재은]님 [송정훈]님 [이환규]님.
[정미진]님은 당일 부득이하게 못 오셨지만,
온라인 발제문의 답안을 이후 별도로 작성해주셨습니다.
활동 사진 및 온라인 발제문의 일부를 첨부합니다.
에리히 프롬의 《The Art of Loving》(1956)을 인용 자료로 참고했습니다.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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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되-기 : 본질과 정체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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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abookclub | 2026.09.27 | 38 |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화면 앞에 모인 우리: 특권을 묻고 연결을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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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ano1 | 2026.09.26 | 28 |
이기심 혹은 자기애는 사랑을 저해하는가, 가능케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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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wjdgns | 2026.09.23 | 34 |
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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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w_admin | 2026.08.14 | 37 |
테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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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_admin | 2026.08.04 | 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