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대화법
이번 여름 캠프는 소크라테스 한 사람을 두 주에 걸쳐 따라갔습니다. 1주차가 그가 어떻게 말하고 물었는가를 다뤘다면, 2주차는 그 태도를 오늘의 문제에 직접 적용해보는 자리였습니다.
1주차 | 소크라테스의 대화법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진짜 목적은 그를 겁주어 입 다물게 하는 것이었는데, 정작 그는 덥석 사형선고를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논의의 틀은 설득의 세 요소였습니다. 논리인 로고스, 감정인 파토스, 그리고 사람됨인 에토스. 강연자는 일상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에토스라고 짚었습니다.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말하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지만, 보기만 해도 짜증나는 사람이 논리정연하게 말하면 그 정교한 논리가 되레 얄미워진다는 것입니다. 다만 법률가 같은 전문가들이 에토스와 파토스에 휘둘리지 않도록 훈련받는 이유도 함께 설명되었습니다. 설득력이 크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어 소크라테스 대화법이 세 단계로 정리되었습니다. 첫째는 다독이기입니다.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으니 상대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그리고 철저히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화가 난 고객을 5분 만에 진정시키는 서비스센터 직원의 어법이 비유로 등장했고, 토론에서 논리로 상대를 몰아붙여 울려버린 학생이 왜 멋있어 보이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논리 균형 감각’이라는 개념도 제시되었습니다. 둘째는 ‘논리 토끼몰이’입니다. 상대를 결코 비난하지 않으면서, 상대 자신의 말을 한 단계씩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 모순에 이르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셋째는 산파술입니다. 자신은 지혜를 낳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지혜를 낳도록 돕는 산파라는 것.
강연 후반부는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그런 사람일 수 있었는가로 옮겨갔습니다. 못생기고 가난했으나 무척 건강했던 사람, 전쟁터에서 겁에 질린 장군을 부축해 빠져나온 강심장. 그 비결로 제시된 것은 욕망을 다스리는 능력이었습니다. 행복은 이룬 것에서 바란 것을 뺀 값이라는 윌리엄 제임스의 공식이 인용되었고, 욕심을 줄이는 대신 좋은 욕망을 품으라는 권유가 이어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욕심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가 말한 ‘다이몬’이 양심의 소리로 해석되고,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으로 강연이 닫혔습니다. 인생은 우주가 연출한 연극이고 각자 배역을 맡았을 뿐이니, 어떤 배역이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가장 빛난다는 것입니다.
실습 | 엘렝코스(Elenchos)
강연에 이어 소크라테스의 방법을 직접 연습하는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엘렝코스란 상대방 자신의 신념에서 출발해 그 가치관 전체에 모순이 없는지 검토하고, 그 결과가 생활 속 실천에까지 이르게 하는 일련의 논리적 대화입니다. 핵심은 “X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며, 답변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형태여야만 인정됩니다.
질문의 층위를 나눈 표가 실습의 지도 역할을 했습니다. 그 친구와 무엇을 하고 놀았는가 하는 구체적이고 비본질적인 질문에서, 나에게 치명상을 입힌 친구와도 우정을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으로, 그리고 우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 질문으로. 여기에 엘렝코스의 기본 형태도 단계별로 제시되었습니다. 상대가 A를 강하게 믿을 때, 질문을 통해 B와 C를 받아들이게 하고, B와 C가 A와 모순됨을 드러내는 구조입니다.
2주차 | 소크라테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한기호, 성균관대 교수)
2주차 강연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왜 죽어야 했는가를 시대 배경 속에서 풀었습니다. 전통적 신화의 시대가 물러나고 귀족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아테네에는 민주정과 법정과 민회가 자라났습니다. 중요한 권리가 소수 귀족이 아닌 대중에게 주어진 인류 역사상 최초의 시기,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존재가 된 시기였습니다. 동시에 서로 다른 폴리스의 법과 관습이 비교되면서 절대적 규범에 대한 의심도 생겨났습니다.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는 바로 이 ‘인간의 판단이 중요해진 시대’에 함께 등장했습니다. 소피스트들이 설득의 기술에 주목했다면 소크라테스는 서로 다른 의견을 넘어 누구나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진리를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들에게 그 구분은 무의미했고, 소피스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소크라테스에게 그대로 덮어씌워졌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구름』에서 나쁜 논변이 좋은 논변을 이기고 새 교육을 받은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고도 그것을 정당화하는 장면이 그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되었습니다.
강의는 여기서 열린 물음을 던졌습니다. 프로타고라스가 말한 만물의 척도로서의 ‘인간’은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개별적 개인이었고, 그 생각은 상대주의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보편적 진리는 과연 존재하는가. 있다 해도 우리가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가. 아니면 만인이 만 가지 진리를 가지는 파편화된 사회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토론 주제는 이 물음을 ‘인간중심주의’라는 고리로 오늘의 문제에 연결했습니다. 동물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미래의 인공지능 로봇은 어떤가. 언젠가 만나게 될 외계인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리고 아름다움은 주관적인가 객관적인가.
각 주제마다 상반되는 두 입장과 함께 ‘또 다른 견해’라는 선택지가 나란히 놓인 점이 눈에 띕니다. 참가자들은 각자 주장과 근거를 정리한 뒤 모둠별로 토론 주제를 정해 논의했고, 자기 주장의 근거뿐 아니라 경쟁하는 다른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까지 제시하도록 요구받았습니다. 마지막 시간에는 다른 모둠의 비판과 그에 대한 응답을 나란히 정리한 뒤, 도입과 마무리를 갖춘 한 편의 에세이로 자신의 최종 견해를 써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