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읽고 쓰는 기술에서 철학하는 태도로
2026년 겨울방학 청소년 철학 캠프는 ‘문해력’을 키워드로 삼았습니다. 다만 다룬 방식은 흔히 떠올리는 독해 훈련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두 개의 강연과 실습이 각각 다른 방향에서 같은 질문에 접근했습니다. 잘 읽고 잘 쓴다는 것은 결국 어떤 사람이 되는 일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1주차 강연 | 문해력을 키우는 철학하는 몸 만들기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첫 순서는 ‘책 많이 보고 글 많이 쓰면 좋은 사람 되나요?’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열렸습니다. 강연은 로고스·파토스·에토스라는 좋은 삶의 세 요소 가운데 핵심을 에토스, 곧 품성에 두면서 문해력을 인격의 문제로 옮겨놓았습니다.
이어진 논의의 축은 ‘습(習)’이었습니다. 어제 저녁 한 끼를 잘 먹어서 뚱보가 된 것이 아니듯, 습관이 쌓여 내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원한에 묶인 적대형, 1등이 목표지만 비전은 없는 경쟁형, 기적 질문과 척도 질문으로 앞서가는 성장형이라는 세 가지 ‘라이프 스크립트’가 제시되었고, 자신이 지금 어떤 습을 쌓고 있는지 점검해보자는 권유가 따랐습니다.
후반부는 구체적인 노하우로 채워졌습니다. 1만 시간의 축적, 글 쓰는 몸을 만드는 일의 중요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조각 독서와 아지트에서의 집중 집필, 주장과 근거를 따져 묻는 ‘논리 품새’ 익히기. 그리고 400자가 넘는 글에는 개요가 필요하며 제목은 가장 마지막에 영근다는 조언까지. 성장통을 겪고 있는 참가자들을 응원한다는 말로 강연이 닫혔습니다.
1주차 실습 | 오해를 이해로 만드는 읽기와 듣기의 기술 (윤이정, 前 안양예술고등학교 교사)
두 번째 순서는 몸으로 먼저 겪어보는 자리였습니다. 원문을 본 사람은 단 한 명. 전달자 다섯 명을 거쳐 청중에게 도착한 이야기는 처음과 얼마나 달라져 있었을까요.
실습이 끝난 뒤 그 변형의 정체가 분석되었습니다. 중요하다고 느낀 것만 남는 정보 압축, 중요함의 기준이 사실이 아니라 자기 기준이 되는 가치 개입, 조건과 전제와 예외가 사라지는 맥락 탈락, 한 번 전달된 해석이 다음 사람에게 사실처럼 전달되는 확신 증폭. 오해는 부주의의 결과가 아니라 뇌가 원래 그렇게 생긴 데서 오는 인지 편향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해법으로 제시된 것은 소크라테스 대화였습니다. 판단하지 말고 질문하라.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확신을 늦추기 위한 것이었다는 관점입니다. 이어진 두 번째 실습에서는 개념·이유·공감·가치를 묻는 탐색적 질문과 평가·대안·적용·확산을 묻는 성찰적 질문의 목록을 가지고 같은 원문을 다시 읽었습니다. 질문을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직접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마무리 문장이 캠프 전체를 요약합니다. 질문을 통해 확신을 잠시 미룰 수 있는 사람, 그것이 AI 시대 문해력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2주차 강연 | 철학자의 생각법 (최훈, 강원대학교 교수)
물어보라는 요청입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세 가지 이유가 제시되었습니다. 논증의 목적이 상대를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인 이상 상대가 합리적으로 근거를 대지 않으리라 전제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개념적 이유, 상대를 합리적인 사람으로 인정해야 나도 그렇게 대우받는다는 윤리적 이유, 그리고 상대의 본뜻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타산적 이유입니다. 상대의 말을 가장 약한 형태로 바꿔놓고 공격하는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가 이 지점에서 함께 다뤄졌습니다.
강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반대편도 짚었습니다. 자비롭게 해석한다고 해서 모든 대화가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 주장이 틀렸다고 드러나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사람과는 토론이 성립하지 않으며, 그런 경우에는 토론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비논리적인 사람의 특징으로는 주장을 먼저 정해놓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찾아다니는 태도, 이른바 체리피킹이 지목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반박을 받을수록 오히려 자기 주장에 더 매달리는 이유도 설명되었습니다. 생각을 바꾸는 데는 큰 에너지가 들고, 정체성을 잃는 것은 세상을 잃는 것만큼 큰 타격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토론거리이고 무엇이 아닌가. 개인의 취향은 토론 대상이 아니므로 서로 존중하면 그만입니다. 짜장면이 맛있다는 글에서 시작해 나이를 따지는 데까지 번지는 게시판 싸움의 전형적인 순서, 순대를 무엇에 찍어 먹느냐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이 사례로 등장해 참가자들의 웃음을 자아낼 만한 대목이었습니다.
2주차 실습 | 철학소설 — 「어색한 영준이」(박상욱, 울산고운중 교사)
실습은 한 편의 짧은 소설에서 출발했습니다. 새 학기 첫날, 소극적인 성격의 중학생 영준이가 겪는 하루입니다.
친구 담이는 처음 본 아이들과 몇 분 만에 친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친구가 별거니? 그냥 서로 놀고, 이야기 통하면 친구지.” 영준이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급식실에서 만난 진이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SNS 친구가 있다고 말합니다. 서로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른다면서요. 집에서는 동생 채아가 울고 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 희수가 다른 아이 생일 파티에 간다는 이유로, 희수는 항상 내 편이어야 하고 나랑만 놀아야 한다고 떼를 씁니다. 어머니는 친구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만 영준이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친구는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영준이는 침대에 누워 혼자 생각을 뒤집고 또 뒤집습니다.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친구란 무엇인가. 참가자들은 이 이야기를 읽고 각자 질문을 만든 뒤, 모둠 질문을 거쳐 전체 토론 질문을 함께 선정하는 ‘철학적 탐구공동체’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준비된 연습문제가 논의의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친구가 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가. 친구 사이에 비밀이 없어야 하는가. 친구는 항상 내 편이어야 하는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과도, 애완동물과도, 식물이나 인형과도, 온라인 게임 속 캐릭터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참가자들은 여기서 나아가 친구가 갖추어야 할 조건 세 가지를 직접 만들고, 친구와 친구 아닌 사람을 가르는 자기만의 기준을 세워보았습니다.
주목할 점은 토론이 끝난 뒤의 평가였습니다. 평가표는 두 축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탐구의 측면에서는 개념의 의미를 명확히 했는지, 좋은 이유를 제시했는지, 숨겨진 전제를 찾으려 했는지, 예와 반례를 들었는지를 점검합니다. 공동체의 측면에서는 다른 사람의 관점을 진지하게 고려했는지, 말할 권리를 배려했는지, 잘 경청했는지,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감정을 살폈는지를 묻습니다. 잘 따지는 일과 함께 잘 듣는 일을 나란히 평가한 셈입니다. 이날 오전 강연이 말한 ‘자비로운 해석’이 오후 실습의 평가 기준으로 그대로 이어진 대목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