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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학문 차등과 평등 너머: 대등생극론—제6회 시대정신포럼

조동일(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발표 | 수입학을 넘어, 세계사를 바로잡는 철학으로

https://youtu.be/QbJ-ArGKj2M?si=po8832ioxCE0pvnM (1부 발표)

이번 시대정신포럼의 발표는 시대 진단에서 출발했습니다. 근대가 종말에 이르러 역사의 선후 역전이 거대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오랫동안 선진국을 뒤따르던 한국이 이제 앞에 나서야 할 자리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응답이 공연예술의 즐거움이나 발전된 기술, 하물며 무기일 수는 없습니다. 그릇된 세계사를 바로잡는 철학을 내놓는 것이 가장 긴요한 과업이며, K-팝이나 K-드라마보다 훨씬 더 나아간 K-학문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겨냥한 것은 ‘철학’이라는 말 자체였습니다. 이 말은 서양의 필로소피를 일본에서 옮긴 번역어이고, 여기서 착오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철학과가 사실상 서양철학과가 되고,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은 곁방살이 신세가 되며, 서양철학은 보편적이고 우리 것은 특수하다는 열등의식이 자리 잡습니다. 발표자는 ‘哲’이 『시경』의 ‘哲人’에서 유래했음을 짚었습니다. 철인은 우인(愚人)과 달리 유익한 말을 들으면 알아듣고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대등한 관계에서 소통하고, 판단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슬기로움이며, 그런 사람이 하는 학문이 곧 철인학(哲人學)이라는 것입니다.

방법론으로 제시된 것은 ‘달관언어’였습니다. 『노자』의 구절 “하늘 그물은 넓고 넓어, 성글어도 잃는 것이 없다”에 그 반대말 “땅 통발은 좁고 좁아, 빽빽해도 잃는 것이 많다”를 나란히 놓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늘날 학문은 천착에 몰두하며 서양의 수리언어를 추종하다가 궁벽해지고 길을 잃었다는 진단입니다. 정확하고 엄밀한 사고를 위해 과학을 본뜨려 하면 외연이 줄어들어, 포괄적이고 총체적이어야 할 철학의 본분을 저버리게 됩니다.

차등론에 대한 비판은 우리 전통에서 근거를 끌어왔습니다. 사람은 머리가 위에 있어 정생(正生)이고 금수는 옆에 있어 횡생(橫生)이며 초목은 아래에 있어 역생(逆生)이라는 윤리적 등급에 맞서, 홍대용은 인류와 금수와 초목이 각기 제 나름의 예의를 갖추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람에서 사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사물에서 사람을 보면 사물이 귀하지만, 하늘에서 보면 둘은 균등합니다. 최한기는 여기에 각론을 더했습니다. 사람의 무리 가운데도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고 금수 가운데도 가르침에 순응하는 자가 있으니, 어찌 사람에게만 가르침이 있다고 하겠느냐는 물음입니다.

역사철학의 골자는 몇 개의 명제로 요약되었습니다. 지나치면 반대가 되는 것이 대원칙입니다. 선진은 우월감에 사로잡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자멸하며, 후진은 열등감을 반발의 근거로 삼아 활력을 얻습니다. 역사는 변증법의 투쟁이 아니라 대등생극의 선후 역전으로 향상된다는 것입니다. 계급투쟁에 대한 비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지배계급의 차등론에 맞서 피지배계급이 내세운 평등론은 혁명하고 집권하면 새로운 차등론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혁명이나 집권이 아니라 소통과 설득의 방법으로, 정치와 거리를 두는 학문과 예술이 그 선두에 서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총괄은 세 이념의 구도로 정리되었습니다. 차등론은 우파의 이념이고 평등론은 좌파의 주의이며, 대등론은 그 사이의 중도 노선입니다. 상생이 상극이고 상극이 상생임을 분명히 하는 생극론을 통해 좌우 편향의 일탈을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만물대등생극에서 만생대등생극이, 만생대등생극에서 만인대등생극이 이루어지는 원리를 밝히는 작업은 인간중심주의의 시정으로 이어집니다. 인류의 멸종이 자업자득이라 하더라도 만생과 만물로의 피해 확대는 부당하므로, 그 파국을 막는 일까지 이 철학의 과업이라는 말로 발표가 닫혔습니다.

토론 | 존재인가 당위인가, 그리고 상극을 어떻게 품을 것인가

첫 물음은 이 이론의 성격을 겨냥했습니다. 대등생극론은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존재론적 명제인가,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윤리적 명제인가. 답변은 양쪽 모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만물이 서로 당기고 있다는 것은 존재 자체이지만, 그 존재를 왜곡해 대등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견해가 있기에 비판이 따라붙습니다. 존재를 바로 아는 것이 곧 올바른 실천이자 윤리라는 것이며, 존재론과 당위론을 갈라놓고 학문은 존재만 말해야 한다는 서양 학문의 전제가 이 대목에서 함께 비판되었습니다.

‘生則克’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도 쟁점이었습니다. 생과 극이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함께한다는 해석과, 전화위복처럼 시간이 지나며 서로 전환된다는 해석 가운데 어느 쪽인가. 답은 둘 다이며 나아가 생이 극의 원인이 되고 극이 생의 원인이 되는 관계까지 포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타당한 가능성 중 하나를 골라 나머지를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이 정체성을 잃는 길이라는 지적이 뒤따랐습니다.

네 문명을 상극에서 상생으로 이끄는 방안으로 자유상업문명의 확산을 제시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에는 분명한 반론이 돌아왔습니다. 상품은 경쟁에서 이겨 차등을 입증해야 하지만 철학은 대등하게 포용해야 하므로, 둘은 정반대 방향을 향한다는 것입니다. 상품 경제는 차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심화시키며, 한국이 상품 경쟁력으로 세계를 이끄는 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라는 답이었습니다.

서양철학 비판이 과도한 일반화가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있었습니다. 서양철학 내부에도 일원론과 탈인간중심주의의 흐름이 있고, 끊임없는 자기비판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왔다는 지적입니다. 답변은 그 장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통찰하는 총론적 접근이 중요하다는 쪽이었습니다. 절충으로 새 철학을 만들 수는 없으며, 서경덕의 기론처럼 우리 전통에서 출발해 자기 개념과 논리로 내적 일관성을 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합적 사고를 발전시켜온 동아시아에서 왜 오늘 한국의 갈등이 이토록 극심한가라는 물음도 나왔습니다. 답변은 법 만능주의를 지목했습니다. 법적 시비에 국민이 말려들면서 정치적 갈등이 증폭되며, 법이 적게 작동할수록 좋은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상극 자체를 없애야 할 것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상극이 크면 상생도 크다는 역설, 억지로 합의를 도출하기보다 서로 다른 견해가 동시에 타당함을 인정하는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답의 요지였습니다.

발표와 토론을 관통한 것은 하나의 태도였습니다. 대립하는 견해 중 하나를 골라 나머지를 물리치는 대신, 그 대립 자체를 끝까지 끌어안고 가는 것. 이날의 토론이 합의에 이르지 않은 채 각자의 논거를 선명하게 남기고 끝난 것도, 어쩌면 대등생극론이 말하고자 한 바에 가장 가까운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 일시: 2026년 4월 27일 16:30~18:30
  • 장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68-20, 6층 더 갤러리
  • 주제 : K-학문 차등과 평등 너머: 대등생극의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