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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미술의 모색: 해방 후부터 1970년대까지―제2회 시대정신포럼

정형민, 박계리

발표 | 서양을 받아들이는 일과 ‘한국적인 것’을 찾는 일 사이에서

발표는 2024년 출간된 저서를 바탕으로, 해방 후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미술이 걸어온 길을 따라갔습니다. 다룬 범위는 한국적 큐비즘과 앵포르멜, 단색조 회화와 전위미술, 공공미술에 이르지만, 이날의 중심은 그 밑바닥을 흐르는 ‘전통론’이었습니다.

출발점은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20~21세기 한국미술사는 서양미술의 여러 양식이 한국에 들어오고 전개되는 과정과, 이에 대한 주기적인 대응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서양미술의 수용은 곧 근대화이자 현대화를 의미했고, 전 세계가 연결된 지금은 서양미술 양식이 지배하는 전지구적 동일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에 대응하는 지역화의 움직임도 일어나는데, 그 지역적 정체성의 단위는 ‘민족’에서 젠더와 정치, 경제, 사회적 이데올로기 공동체 등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논의의 절반은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전통론을 세 사람의 글을 통해 추적하는 데 할애되었습니다. 고유섭은 한국 문화의 창조가 ‘자주적 정신’에 있다고 보았고, 1940년대에는 시대 구분 없이 조선 미술 전체의 특색을 논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남긴 어휘들 — ‘멋’,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비정제성과 비균제성, 무관심성, 그리고 ‘구수한 큰 맛’ — 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한국미의 특성을 지칭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 미술에서 본 ‘비애의 미’를 생동성과 굳건한 변화성으로 보완하고, 백색 미학 대신 ‘단색조’로 특징지으며 해학성 논의로 전개시킨 점도 짚였습니다.

윤희순은 전혀 다른 자리에 섰습니다. 고구려 벽화에서 민족미술의 원형을 찾고, 반도성을 ‘다양성의 통일, 조화의 미’로 정의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그가 남종 우위론을 북종 우위론으로 뒤집었다는 것입니다. 문인화보다 도화서 화원의 초상화에 조선의 감성과 풍토가 있다고 보았고, 직업 화가들을 “이조의 진부한 상층 분위기에 반발한 미의 투사”라 평하며 계급 비판적 입장을 표면화했습니다.

김용준은 또 다른 길을 갔습니다. 동양주의에서 향토색론으로 선회한 그는 향토색이 특정한 색이나 선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조선심’, ‘조선의 공기’, ‘조선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1939년 동양화로 전향하며 유교 망국론에 역행해 문인화 미학으로 회귀했고, 김정희를 조선 문인화의 원형에 두었습니다. 그가 사용한 ‘인품’, ‘화격’, ‘품격’ 같은 윤리적·주관적 비평 용어, 그리고 ‘내면성’과 ‘정신성’이라는 현대 미술비평의 상용어가 실은 일제강점기 동양성 논의와 문인화론에 연원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발표의 핵심 논지는 여기서 나옵니다. 해방 후 일본에서 수학한 작가와 비평가들이 수십 년간 한국 미술계를 주도하면서, 일제강점기에 그들이 탐구했던 향토색과 조선심, 동양성과 문인화 미학이 현대로 다시 소환되었다는 것입니다. 추상이 주류가 되자 서양 미술과의 변별성이 희미해졌고, 그 구별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전통론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전통론의 틀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들이 뒤따랐습니다. 1960년대 작가들의 작품에 청동 제기의 도철문, 부적, 불두와 토기, 가면, 달항아리와 학 같은 전통 소재가 등장합니다. 추상이 국제 양식이 될수록 정체성 규명이 절실해졌기 때문입니다. 1975년 도쿄화랑에서 열린 〈백색전〉은 그 분기점이었습니다. 야나기가 흰 옷을 “쓸쓸하고 조심성 많은 마음의 상징”으로 읽었던 바로 그 백색이, 이번에는 한국 정신과 자연으로 소급되어 “빛깔이기 이전에 하나의 정신”으로 재해석됩니다.

발표가 짚은 긴장은 분명했습니다. 단색조 회화의 키워드가 된 ‘정신성’은 한국적 특색이라기보다 동양주의의 일환으로 등장한 개념이며, 서양 근대를 수입한 일본이 이미 도쿠가와 말기부터 서양은 물질성, 동양은 정신성으로 스스로를 구분 지었던 데서 온다는 것입니다. ‘자연’ 역시 1940년대 초 일본 근대초극론의 일부였습니다. 한편 작가 본인은 자신의 작품이 불교나 선의 세계와 결부되는 데 대해 “한국적, 동양적 사상과는 관계없이 해본 것”이라고 구술하기도 했습니다. 비평의 언어와 작가의 자기 인식 사이에 놓인 간극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마지막은 2000년대로 이어집니다. ‘한국적 모더니즘’으로 규정되었던 모노크롬 추상이 유신 정권기와 겹쳐 특정 계층과 집단에 한정된 미술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2012년의 전시를 기점으로 ‘단색화’라는 명칭이 굳어지며 한국 고유의 추상 화풍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명칭 뒤에는 서양 모노크롬의 영향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양식임을 명문화하려는 미술 비평계의 민족주의 미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국과 북방 대륙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한국의 정체성 인식은 이후 서양과의 관계 설정을 위해 새로운 담론으로 전개되어야 했지만, 아직은 근대 담론이 그대로 활용되고 있다는 진단으로 발표가 닫혔습니다.

토론 | 흘러들어온 것인가, 불러들인 것인가

첫 번째 토론은 ‘수용’이라는 말 자체를 겨냥했습니다. 어떤 서양 미술 양식이 그냥 흘러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선택해 호출한 것으로 본다면, 그 과정에서 우리 내부의 상황이 한국 현대미술사의 전개에 더 주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물음입니다.

논거는 역사적이었습니다. 광무개혁의 ‘구본신참(舊本新參)’은 중화의 보편성을 거부하면서도 개화를 서구화와 동일시하지는 않았던 개화 세대의 고민을 보여줍니다. 반면 한 세대 뒤인 1890년대에 태어나 식민지 계몽주의의 영향 속에 성장한 신진 세대는 전통에 대한 미련을 이미 갖고 있지 않았고, 전통을 근대적인 것의 타자로 규정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이데올로기에 자극받으면서 일본을 통해 서양을 습득하고 조선에 대한 정체성을 재구축해간 세대입니다.

해방 후 분단이라는 조건도 같은 틀로 읽혔습니다. 한국 미술계는 미군정기에 확산된 추상미술을 중심으로, 북한 미술계는 소련 군정기에 유포된 리얼리즘 미술을 중심으로 현대화가 전개되었고, 그 과정에서 일본화의 잔재 극복이라는 과제 아래 한쪽은 수묵화를, 다른 쪽은 민중미술 계승의 맥락에서 채색화를 선택하면서 수묵 대 채색의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앵포르멜의 수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이라는 실존의 문제 앞에 선 청년들에게 그 양식이 실존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기에 선택되고 호출되었으며, 같은 앵포르멜 작가들 사이에서도 몇 살에 전쟁을 겪었느냐에 따라 동기가 달랐을 수 있다는 세밀한 지적이 덧붙었습니다.

단색화에 대해서도 중요한 단서가 제시되었습니다. 도쿄화랑 전시를 위해 작품들이 새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 작업을 하고 있던 작가들 중 일부가 기획자에 의해 선택되어 전시가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그 작가들과, 이후 단색화 바람이 분 뒤 이 계열에 동참한 작가들은 구분해서 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토론은 한국 현대미술이 무조건적인 서구화를 추수하기보다 현대와 전통 사이에서 끊임없이 현재적 정체성의 의미를 모색해왔고, 그것이 발전의 커다란 원동력이었다고 보았습니다. 1980년대 민중미술과 1970년대 단색화는 가치 판단에서 정반대였지만, 정체성을 전통으로 환원하는 방법론에 기초해 결국 ‘근대의 주체성’을 반문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는 평가였습니다.

두 번째 토론은 사회과학의 자리에서 읽은 독후감이었습니다. 두 가지 단상이 제시되었습니다. 하나는 ‘전통’의 강조가 한국 미술가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한 하나의 접근 방법이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외래의 패러다임에 접하고 새로운 기법을 익히면서 거기에 새로움을 더하는 가장 편리한 방법의 하나가 한국 고유의 미와 기법, 재료를 가미하는 것이었으리라는 해석입니다. 여기에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더해지고 국가 개입까지 겹치면 상승효과는 몇 배로 늘어납니다. 1960년대 초 문화재보호법 제정과 함께 정부가 민속 문화에 관심을 가진 일, 그리고 일제강점기 ‘조선 향토색’ 화풍의 유행이 조선미술전람회 지원을 비롯한 총독부 문화정책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이 나란히 놓였습니다. 국가 정책과 예술 사이의 긴밀한 관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정신성’이라는 말의 계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근대화 선발국에서 문명은 민족 간 차이보다 보편적 진보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발전한 반면, 후발국이었던 독일은 일종의 콤플렉스의 발로로서 한 사회의 가치관과 이상, 예술적·윤리적 특질과 결부되는 ‘정신문화’를 내세웠습니다. 그들에게 문명이란 정신문화에 비해 낮은 수준의 ‘물질문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기에 민족 간 차이와 집단 고유의 특성이 유지되는 성향이 더 강조되는 개념이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특정 민족의 우수성을 내세우는 편견으로 이어졌습니다. 일제가 국가 주도의 근대화 과정에서 주로 독일의 문물을 배우고 수입해 적용했고, 독일을 모방한 그들이 자기 민족의 우수성을 내세우며 이웃 민족의 변화를 강요한 역사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토론은 복잡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문명과 문화의 구분이 보편성 대 특수성, 변화 가능성의 차이를 돋보이게 하는 이점이 있음을 이해하면서도, 후후발 근대화 국가로서 한국의 근현대 미술사에 대두한 ‘정신성’ 강조 풍조에 대해서는 쓸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자신감을 가지고 동서양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고유문화와 외래문화를 융합해 보편적 인류 문명 창조에 기여하는 예술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는 말로 토론문이 맺어졌습니다.

첫 번째 토론이 던진 또 하나의 질문은 책의 구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해방 후부터 1970년대까지 현대화를 이끈 많은 미술가들이 저마다 자신을 ‘전위미술가’로 명명하고 있는데, 왜 오브제미술과 해프닝, 이벤트를 다루는 4장에만 ‘전위미술’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가. 그 이유를 조금 더 설명해준다면 책의 의미가 더 잘 드러날 것 같다는 요청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