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umazein 인문철학재단 타우마제인
Forum

지금의 한국인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제3회 시대정신포럼

함재봉(한국학술연구원 원장)

발표 | 고통의 역사가 번영의 역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발표는 하나의 명제로 시작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시대정신은 ‘포용(inclusivity)’이라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의 쇠락과 멸망에서 식민통치와 해방, 분단과 건국, 6·25와 4·19, 5·18과 6·10에 이르는 역사는 치욕과 억압, 투쟁과 상잔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들은 역사의 고비마다 보다 포용적인 체제를 건설하는 데 성공했고, 고통스러운 역사가 동시에 번영의 역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민족정신(volksgeist)이 저항과 투쟁이었다면 시대정신(zeitgeist)은 포용이었다는 대비가 논의의 축을 이뤘습니다.

출발점은 조선 체제의 성격이었습니다. 전체 인구의 3~5%에 불과한 문반 사대부가 나머지를 분리 통치하는 체제였고, 여성과 무반·서얼·중인·서북인·향리·평민·천민을 철저히 차별하는 신분제도를 통해 모든 권력과 부를 극소수가 누렸습니다. 발표자는 1910년 조선 멸망 당시 사람들이 나라를 빼앗긴 것은 슬퍼하면서도 조선왕조와 유교문명의 몰락은 슬퍼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3·1운동은 국권회복 운동이었으나 왕조 복벽운동은 아니었습니다. 순종과 영친왕이 모두 생존해 있었지만 이들을 다시 왕위에 앉히자고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라는 되찾아야 했지만 조선의 복원은 원치 않았던 사람들이 대안을 찾아 나섭니다. 간도로, 연해주로, 상해로, 동경으로, 모스크바로, 하와이로. 새 나라에 걸맞은 정치체제와 인간형을 찾기 위한 긴 여정에서 다섯 가지 대안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발표의 골격입니다. 친중위정척사파,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적민족주의파. 1945년 이 다섯이 한반도에 모여들었으나 어느 것이 새 나라의 정체성을 제공할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그 결과가 분단과 동족상잔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극도의 이념적 분열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번영의 기초를 놓을 수 있었는가. 발표는 아제모글루와 로빈슨의 ‘포용적 제도’와 ‘약탈적 제도’ 개념을 끌어와 답했습니다. 조선의 차별적 제도는 이념적 비판만으로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강화도조약 이후 개항장 조약 체제에 편입되면서 조선 사람들은 조약과 만국공법, 해관과 관세를 배워야 했고 외국어를 구사해야 했는데, 이를 수행할 인적자원은 문반 사대부가 아니라 율관·산관·역관 같은 중인과 무반·서얼·향리 등 이른바 ‘제2신분계층’이었습니다. 이들이 조선의 근대화를 견인했다는 것입니다.

논의에서 가장 논쟁적인 대목은 일제시대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발표자는 ‘한민족’에게는 억압의 시대였으나, 조선 체제에서 차별받던 여성들과 제2신분계층에게는 정치·경제·사회·문화 활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할 기회가 주어진 시대였다고 보았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남녀를 불문한 참정권 획득으로 체제가 한층 포용적으로 전환되며, 반정부 투쟁이 가능하고 그 투쟁이 결국 정부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포용적 체제의 전형이라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경제 영역의 사례도 제시되었습니다. 한국 경제 발전을 견인한 대기업 창업주 중 전통적인 문반 사대부의 후예는 없으며 절대다수가 평민이나 제2신분계층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발표는 최근 한국 경제가 역동성을 잃어가는 이유 또한 같은 논리로 짚었습니다.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를 가능케 했던 포용적 체제가, 바로 그 체제의 최대 수혜자인 재벌들이 시장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토론 | 포용은 이미 있었던 것인가, 앞으로 이뤄야 할 것인가

토론은 발표의 핵심 명제를 정면에서 겨냥했습니다. 쟁점은 크게 세 갈래였습니다.

첫째는 다섯 범주의 성격입니다. 개인이나 집단이 두세 파의 성격을 함께 지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한용운을 예로 들어, 일본이 받아들인 물질문명을 부러워한 개화파의 면모와 독립운동가로서의 민족주의, 그리고 불교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가치를 함께 지녔다는 것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있었습니다. 포용은 동사에서 나온 말이므로 언제나 주체를 상정하며, 주체가 다르면 포용의 범위와 방식도 달라집니다. 시대정신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내용이 완전히 달라지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둘째는 ‘한국 사람’이라는 개념 자체였습니다.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려면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선행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입니다. 다섯 범주는 특정 시대 특정 소수 집단이 공유한 생각이었으므로 인민 전체가 공유했다고 보기 어렵고, 다섯 종류의 한국 사람의 정체성일 수는 있어도 한국 사람의 정체성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개념이 조선의 당파나 식민사관을 연상시킨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 ‘국민’, ‘나라’, ‘국권’ 같은 핵심 개념들이 뒤섞여 쓰이고 있으니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다섯 계파를 가로지르는 공통분모는 결국 ‘민족’이 아니겠느냐는 견해가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이 조선을 철저히 부정하고 제로베이스에서 건설되었다면 유교 전통은 정말 단절된 것인지, 오히려 명맥을 유지하며 서구 제도와 융합된 것은 아닌지 묻는 질문도 이어졌습니다.

셋째, 가장 첨예한 쟁점은 ‘포용’을 시대정신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한가였습니다. 민족정신은 저항과 투쟁인데 시대정신은 포용이었다는 구분 자체가 논리의 비약이며, 다섯 코드 그 자체를 당대의 시대정신으로 보아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되었습니다. 아제모글루가 말한 포용은 시대정신이라기보다 포용적 제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시대정신이 역사적으로 변하는 것이라면 포용적 제도는 초역사적 구조에 가깝다는 구분도 나왔습니다. 같은 식민 지배를 받은 남북한의 차이는 오히려 『좁은 회랑』의 테제로, 곧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날개로 좁은 회랑에 진입했다는 해석으로 설명하는 편이 설득력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정치사 중심의 서술이라 문화사와 문명사에 대한 고찰이 빈곤하며, 그 때문에 오늘날 한류의 성공을 전통과 단절된 다섯 코드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덧붙었습니다.

현실 진단을 둘러싼 이견도 분명했습니다. 조선과 일제 총독부, 북한 같은 획일적 체제와 비교하면 대한민국의 다양성은 두드러지지만, 다원주의 정치와 자유시장 경제를 갖춘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대비하면 포용 능력은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포용은 근현대사의 시대정신이었다기보다 지금부터 지향해야 할 ‘과제로서의 시대정신’으로 규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더 강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수많은 차별과 배제를 반복해왔고 여러 집단이 여전히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데, 포용만을 시대정신으로 강조하는 것은 현실의 불평등 구조를 도외시하는 역사관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식민지기의 근대화 논리를 포용으로 설명하는 것이 지배의 폭력성을 희석시킬 위험, 재벌 중심 압축 성장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강요된 희생을 지운 채 번영을 포용성의 증거로 연결하는 문제도 함께 지적되었습니다. 진정한 포용은 역사적 필연이 아니라 끊임없는 사회적 투쟁과 제도적 개혁의 결과라는 것이 그 요지였습니다.

한 시대를 무엇으로 이름 붙일 것인가. 이날의 토론은 그 이름이 이미 이룬 성취의 기록인지, 아직 이루지 못한 과제의 이름인지를 두고 갈렸습니다.

  • 일시: 2025년 9월 24일 16:30~18:30
  • 장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68-20, 6층 더 갤러리
  • 주제 : 지금의 한국인은 어떻게 탄생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