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본질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실존주의. 그러나 인간은 이 막중한 자유와 불안을 견디지 못한 채, 자신이 마치 정해진 규칙이나 타인의 평가에 종속된 ‘사물’인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곤 합니다. 장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참여형 경험으로 전환하여, 참가자들이 저마다 자신을 내려놓고 철저히 주어진 역할에 몰입하는 <필로소퍼 게임: EP.02 장폴 사르트르>가 열렸습니다. 아젠다에 대한 과반수 합의와 숨은 ‘블랙노드’를 찾아내는 입체적인 메커니즘 속에서, 참가자들은 인간의 본질과 자유의 무게를 게임을 통해 깊이 있게 경험했습니다.
개인 레퍼런스 플랫폼 ‘베리타스’를 도입할 것인가?
개인 레퍼런스 플랫폼 ‘베리타스’는 지원자의 언행, 성장 환경, 학교생활, 도덕성, 업무 능력 등을 타인의 익명 리뷰를 통해 입체적으로 평가합니다. 시가총액 1위 기업인 U사의 전격적인 도입 예고로 채용 시장 전반의 지형 변화가 예고된 상황에서, 참가자들은 각자 배정받은 역할에 몰입해 베리타스의 전면 허용부터 전면 금지, 선택적 허용, 도입 유보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치열한 토론을 펼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객관적 평가 체계가 곧 사회적 질서와 도덕성을 지탱하는 근간이라며 시스템의 효용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반면, 베리타스가 개인이 매 순간 스스로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거대한 ‘평판의 감옥’이자 위선의 도구일 뿐이라며 날카롭게 맞서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둘러싼 핵심 쟁점
토론이 깊어질수록 논점은 사르트르가 《닫힌 방》에서 선언했던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화두와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을 교차하며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저마다의 입장에 몰입한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핵심 논증들이 맞부딪혔습니다.
- 본질의 외주화와 타인의 시선: 과연 타인이 남긴 평판과 시선의 총합이 곧 개인의 본질을 규정하는가, 아니면 그것은 타인의 욕망에 종속된 객체로 전락하는 과정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 노동의 도구화와 효율성의 딜레마: 시스템이 효율성과 성과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울 때, 인간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 주체라기보다 끊임없이 등급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노동의 도구’로 전락한다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 표준화와 선택권의 박탈: 민간 기업의 도입을 넘어 시가총액 1위 기업의 채택이 사회 전체의 거부할 수 없는 규범으로 굳어질 경우, 개인의 실존적 선택지는 원천 차단될 것이라는 경고가 대두되었습니다.
- 영역 분리의 가능성: 반대로 일터에서의 철저한 시스템 적용과 사생활에서의 실존적 자유는 충분히 분리될 수 있다는 실용적 절충안이 맞부딪히며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했습니다.
이처럼 시스템의 편리함 뒤에 가려진 억압을 고발하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토론을 은밀히 ‘선택 적 허용’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숨은 블랙노드의 책략까지 더해져 논점은 더욱 다층적인 국면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합의의 부재와 남겨진 질문
결국 치열한 공방 끝에 이번 게임은 어느 한쪽의 명확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채 결론 유보 상태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합의의 부재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르트르는 《닫힌 방》을 통해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타인이 나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순간 주체성을 잃고 그들의 욕망에 종속된 객체로 전락한다는 실존적 공포를 뜻합니다. 언제든 댓글과 평점을 확인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 환경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사르트르가 선언이 보다 다층적인 의미로 다가옵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선언을 둘러싼 선택과 책임의 문제는 지금 이 순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으로 여전히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 일시: 2026년 8월 21일(금) 19:30~21:30
- 장소: 서울시 용산구 신흥로 11 해방촌 복합문화공간 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