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umazein 인문철학재단 타우마제인
Forum

왜 다시 열린 사회인가?—제5회 시대정신포럼

이한구(경희대학교 석좌교수)

발표 | 20세기의 열린 사회는 21세기를 견딜 수 있는가

이번 포럼은 하나의 역설에서 출발했습니다. 오늘의 세계는 외형상 그 어느 시대보다 열려 있습니다. 정보와 자본은 국경을 넘어 순환하고, 지식은 전 지구적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며, 민주주의는 보편적 정당성을 획득한 제도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이 외적 개방성과 달리 민주주의는 내부에서부터 잠식되고 있고, 비판의 자유는 알고리즘적 여론 형성과 감정의 극단화 속에서 실질적 효력을 잃어갑니다. 열린 사회는 더 이상 자명한 성취가 아니라, 스스로를 성찰해야 하는 문명의 형식이 되었다는 진단입니다.

발표는 먼저 열린 사회 개념이 태어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베르그손에게 인간의 인식은 본능과 지성과 직관의 세 층위로 나뉩니다. 지성은 현실을 분석하고 분리하는 능력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나와 남을 구분하는 경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애국심은 지성의 산물이지만 인류애로 나아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닫힌 사회가 의무의 도덕과 정태적 종교로 유지된다면, 열린 사회는 직관을 통해 생명의 흐름 자체에 공감하는 사랑의 도덕과 역동적 종교를 축으로 삼습니다. 베르그손이 보기에 이런 의미의 열린 사회는 아직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포퍼는 같은 개념을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다시 세웠습니다. 핵심은 비판적 합리주의입니다. 모든 지식은 오류 가능하며, 진보는 확증의 누적이 아니라 비판을 통한 오류 제거에 달려 있습니다. “나는 틀릴 수 있다”는 태도가 민주적 대화의 문을 엽니다. 반증 가능성이 지식의 자격 조건이 되고, 진리로 통용되는 이론조차 잠정적일 뿐입니다. 그가 지향한 자유는 간섭의 부재에 그치지 않고 삶을 실현할 조건의 충족까지 포함하며, 공공정책의 기준은 행복의 극대화가 아니라 피할 수 있는 고통의 감소였습니다.

발표자가 짚은 것은 두 이론이 공유한 암묵적 전제였습니다. 인간을 중심적 행위 주체로 상정하는 사회 이해, 안정적인 자연 환경에 대한 가정, 그리고 제도적 합리성이 스스로의 병리를 교정할 수 있다는 신뢰. 20세기 산업문명의 조건에서는 설득력을 지녔던 이 전제들이 오늘날에는 더 이상 자명하지 않습니다. 이는 사상적 결함이 아니라 시대적 한계였습니다.

디지털 혁명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습니다. 아날로그의 연속성이 디지털의 이산성과 계산가능성으로 대체되면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정보 질서는 문자에서 이미지로 옮겨갔고, 인식의 무게중심은 이성에서 감성으로 이동했습니다. 딥페이크와 알고리즘 추천은 사실과 허위의 기준을 무너뜨리며 공적 진실을 사적 진실들로 분절시켰습니다. 여기에 몸을 가진 인공지능과 유전적으로 증강된 인간이 등장하면서, 열린 사회가 전제했던 ‘주체’와 ‘행위의 장’ 자체가 변형되고 있습니다.

발표의 핵심은 세 가지 전환의 제안이었습니다. 첫째, 원자론적 존재론에서 얽힘 존재론으로. 개인을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망 속에서 안정화된 결절점으로 파악하되, 관계를 재구성할 상대적 자율성과 책임을 지닌 존재로 봅니다. 둘째, 단순 연결주의에서 연결망 반증주의로. 누구나 비판할 수 있는 구조, 현실을 수정할 수 있는 경로, 주류 네트워크를 점검할 수 있는 자율적 통로를 갖춘 사회를 지향합니다. 셋째, 자유민주주의에서 공화민주주의로. 다수결의 횡포와 포퓰리즘이라는 취약점을 넘어, 공동선에 대한 시민의 공통 참여와 자의적 지배로부터의 자유를 중시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룬 것은 21세기 열린 사회의 새로운 적대자였습니다. 베르그손이 집단 이기주의를, 포퍼가 정치적 전체주의를 지목했다면, 오늘의 적대자는 광신주의입니다. 발표자는 칸트를 빌려 광신이 이성 바깥에서 오는 타자가 아니라 이성의 남용과 오용에서 발생한 것임을 짚었습니다. 극단적 교리의 고수, 그것을 절대적 진리로 삼는 실천의 강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폭력까지 동원하는 태도. 이 셋이 결속될 때 광신이 완성되며, 종교적 배타주의와 이념적 선민주의와 정치적 독단주의라는 세 얼굴로 나타납니다.

토론 | 얽힘과 책임, 그리고 남겨진 실천의 물음

가장 밀도 높은 논쟁은 ‘얽힘 존재론’을 둘러싸고 벌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얽혀 있다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개별 주체가 약화되면 열린 사회가 강조하는 책임과 공동선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반론이 제기되었습니다. 특히 얽힘 존재론의 대표 논자인 카렌 바라드가 주체와 객체의 해체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관계망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결절적 주체’를 강조하는 발표자의 입장과는 충돌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차라리 네트워크 존재론이나 관계 존재론이라는 용어가 적합하리라는 대안도 함께 제시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개체성과 관계성을 동시에 인정하려는 의도에 있었습니다. 인간이 관계 속의 자아와 독립적 자아라는 양면을 지니듯, 두 존재론의 대립을 종합하기 위해 이 용어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관계를 중시할 때 비로소 세상의 문제에 나도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생기며, “나는 무관하다”는 식의 잘못된 개인주의를 경계할 수 있다는 설명이 덧붙었습니다.

적용 범위에 관한 물음도 있었습니다. 포퍼의 열린 사회는 국민국가를 전제로 했지만, 오늘의 시급한 문제들은 국경을 넘어섭니다. 기후 변화나 감염병 앞에서 국민국가는 국제적 관점에서 오히려 닫힌 사회로 작동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집단 광신주의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디지털 문명 쪽을 가리켰습니다. 팩트와 허위가 구별되기 어려운 환경 자체가 광신에 빠지기 쉬운 조건을 만들고, 그 환경이 다시 팬덤 정치와 포퓰리즘을 가속한다는 것입니다.

토론의 마지막은 실천의 문제로 향했습니다. 오늘의 논의가 깊이 있었으나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솔직하게 제기되었고, 젊은 세대가 공격의 대상이 될까 우려해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현상이야말로 열린 사회의 주적이라는 진단이 이에 응답했습니다. 답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주의라는 포퍼의 비판도 다시 소환되었습니다. 인간이 자유로운 선택으로 답을 만들어가는 이상, 열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오늘의 현상들이 ‘파도’라면 철학자의 몫은 그 파도를 만드는 ‘바람’, 곧 시대정신에 대해 말하는 일이라는 마무리와 함께, 앞으로는 파도와 바람을 함께 다루는 열린 포럼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자리가 닫혔습니다. 이날 하나의 결론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결론에 이르지 않은 채 서로 다른 목소리가 끝까지 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날 다룬 주제에 대한 하나의 답이기도 했습니다.

  • 일시: 2026년 3월 31일 16:30~18:30
  • 장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68-20, 6층 더 갤러리
  • 주제 : 새로운 시대의 적대자들: 집단광신주의